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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에 대한 기억

NAME : 최고관리자     DATE : 15-05-28 15:22     HIT : 606

2009년도는 신종플루가 유행하면서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해로 기억된다(처음에는 돼지독감으로 메스컴을 도배했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타미플루 및 인플루엔자 백신의 공급이 부족하여 국가적인 문제가 되었고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 기반이 갖추어졌던 녹십자의 주가가 사상 최고로 올랐던 기억도 난다. 신종플루의 사태를 모티브로 하여 "연가시"라는 영화도 제작되어 상영되기도 하였다. 한참 유행하던 당시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 중이어서 나 역시도 환자를 볼 때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기도 하였지만, 신종플루로 인해 가슴을 쓸어내렸던 일이 있었다. 당시 27세의 여성으로 직장이 서울의 어느 공기업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검진을 하러 오셨는데 서울의 병원은 너무 예약이 밀려있어서 휴가 차 집에 내려온 차에 위내시경을 받으려고 우리 병원을 방문하셨다. 이분의 어머니가 고혈압 및 고지혈증으로 주기적으로 약을 받으러 병원을 방문하시기 때문에 딸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진찰을 하는데 감기가 좀 심해보여서 감기가 좋아진 후에 내시경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니 어머니께서 수일 후면 다시 서울 직장에 복귀를 해야하기 때문에 내시경 때문에 감기가 좀 더 심해져도 괜찮으니 온 김에 꼭 내시경을 해달라고 하셨다. 감기는 있어도 열은 없으시고 특별히 내시경의 금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내시경을 시행하였다. 내시경 검사는 무사히 마쳤고 특별한 이상 소견은 보이지 않으셔서 내시경 후 바로 귀가하였고, 다음날 감기약을 먹고 있는데도 감기가 좀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 해서 내원하였다. 미열이 있었고 한창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시기였고 의사협회에서는 신종플루가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경험적으로 타미플루를 처방하도록 권고가 나온 상태이므로 타미플루를 포함하여 약을 처방하였고 경과를 보기로 하였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오후 어머니와 함께 다시 방문하였는데 감기는 좀 좋아졌는데 약간 숨이 좀 차는 것 같다고 호소하였다. 일단 감기는 좋아졌다고해서 별로 대수롭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도 폐사진을 찍어서 혹시나 폐렴 등의 유무 등을 확인하자고 말씀드리고 흉부 X선 검사를 시행하였다.. 흉부 X선 검사 결과는 폐렴도 결핵도 아닌 심비대였다. 어머니한테 물어보니 수개월 전에 흉부 X선 촬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상이라는 얘기를 들으셨단다... 27세 젊은 여성의 원인 모를 심비대 소견을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어서 바로 심장 초음파를 시행하였고 그 결과는 . . . . . 확장성 심근병증(dilated cardiomyopathy)이었다... 당시 심박출계수(ejection fraction)가 20% 전후로 측정되었다.. 약간 숨이 차는 정도라기엔 검사 결과가 너무 좋지 않아서 어머니에게 바로 큰 병원 심장내과를 가셔야 한다고 진료의뢰서를 발급해드리고 지금 곧장 응급실로 들어가시라고 신신당부하고 보내드렸다... 이틀 후, 여동생이 병원을 찾아왔다. 어머니 약을 대신해서 받으러 왔다고 한다.. "언니는 좀 어떠신가요?" "타미플루 때문에 심장이 안좋아져서 중환자실에 있어요." '?????' '타미플루때문이라고!!' "아마 약 때문에 그런 건 아닐거에요" 그리고 3-4일 후, 보호자이신 어머니가 방문하였다. 다짜고짜 만약 딸아이가 잘못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란다.. "어머니 진정하시고 어떻게 된 건지 차근차근 말씀해보세요" 사연은 이렇다. 그날 대학병원으로 바로 안가고 인근의 종합병원으로 가셨다고 한다. 인근의 종합병원에서는 여기서는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며 대학병원으로 전원해야 한다고 하였고 그러면서 '타미플루'라는 약 때문에 심장이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시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가서 누워있던 중 심장마비가 와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였고 이후 현재 중환자실에 있다는 것이다. 보호자이신 어머니의 말씀이 대학에서도 어떤 검사를 했는데 그 검사 결과가 타미플루에 의한 심장병으로 판명이 나서 현재는 타미플루의 해독을 위해 타미플루 주사제를 맞고 있다는 것이었다... '타미플루의 해독을 위해 타미플루 주사제를 맞고 있다고???' "곧 대학병원 교수님께서 선생님께 전화를 할 겁니다. 왜 그때 타미플루를 처방했냐고요.. " 막상 교수님으로부터는 전화가 걸려오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로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들을 하셨지만 거기에 대한 반박을 하기보단 아픈 딸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만약 딸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저는 선생님을 고발할 겁니다." 어머니가 나가신 후 관련된 논문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타미플루에 의해 유발된 확장성 심근병증의 보고가 있는지. 어떤 논문에도 타미플루로 인한 확장성 심근병증은 보고된 것이 없었다(있는데 내가 못찾은 건진 모르겠다) 그렇다면 타미플루에 의한 확장성 심근병증보다는 인플루엔자에 의한 확장성 심근병증으로 보아야 타당한 게 아닌가?? 추정하건데 대학에서는 타미플루 해독을 위한 것이 아닌 인플루엔자에 의한 확장성 심근병증으로 타미플루 주사제를 투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중간에 거친 종합 병원의 의사가 타미플루에 의한 것이라고 얘기를 한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보호자가 그렇게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을 찾아가서 담당 주치의를 만날려고 했다.. 전공의 바쁜건 이해를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만날 수가 없어 어렵사리 통화만 할 수 있었다.. 물어 보았다.. 환자의 보호자는 타미플루라는 약 때문에 심장이 저렇게 된 것으로 얘기를 하고 있는데 현재 환자의 상태가 어떻고 원인은 무엇으로 보고 있는지를.. 담당 주치의인 전공의 말이 본인은 약 때문이라고 얘기한 적은 없고 원인은 염증(inflammation)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현재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나와 일반 병실에 있다고 하였다.. 전화기상으로 들려오는 전공의 무뚝뚝한 반응에 기분은 나빴지만 일단은 고비는 넘겼으니 안심이 되어서 고맙다고 전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참 아이러니 했다.. 큰 차이가 있었을런지는 모르지만 타미플루를 안썼더라면... 숨이 약간 가쁘다고 했을 때 감기 때문이려니하고 흉부 X선 찍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려 보냈으면... 만약 하루라도 지체가 됐으면... 그렇다면 보호자께서 나를 고발하느니 할 것이 아니라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 후 환자는 퇴원하였고 보호자께서 외래에 오셔서 말씀하셨다... 자기가 여기 저기 알아보니 약 때문이 아니라 인플루엔자가 원인 이었던 같다고... 하지만.... 나에 대해선 어떠한 사과나 고맙단 인사는 하지 않으셨다.. 보호자인 어머니께서는 지금도 외래에 다니면서 약을 받아 가고 계신다.. 늘 웃으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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