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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쉴만한 물가에서 > M Story         

phobia

NAME : 최고관리자     DATE : 15-05-28 15:43     HIT : 754

Phobia의 사전적 의미는 공포증이다... 사실 사전적 의미의 공포증까지는 아니어도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서 나에겐 유달리 부담스러워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흉강천자(thoracentesis) 전공의 시절 흉수액을 동반한 환자가 입원을 위해 올라오면 흉수의 원인과 치료를 위해 반드시 흉강 천자를 하곤 했다. 흉부 X선 사진과 타진을 통해 천자할 위치를 표시하고 마취 후 18 게이지 바늘로 찔러 1-2 L 정도의 흉수액을 배출시켰다. 전공의 2년차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신장내과를 돌고 있었고 한 연세 많으신 할머니를 병실에서 흉강천자를 하게 되었다. 앞서 한차례 흉강천자를 하셨고 찔렀던 바늘 자국도 선명히 남아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소독과 마취를 한 후 18게이지 바늘을 찔렀는데 흉수액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공기가 나오는 것이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바늘을 빼고 방향을 바꾸어 다시 천자하니 우유색깔의 흉수액이 나왔다.. 1L 정도 빼고 나면서부터 갑작스럽게 환자가 호흡 곤란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같이 있던 주니어 스탭이 흉부 외과로 급히 연락을 취하였고 다행스럽게도 흉관 삽관이 제 때에 이루어져 환자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아마도 이때부터 흉강천자에 대한 phobia가 생긴 것 같다.. 현재 근무하는 병원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전부터 혈압약을 타 드시던 할아버지께서 요즘에 갑자기 숨이 차다고 하셨다. 흉부 X선 검사상 왼쪽으로 흉수액이 차 있었고 입원하여 2차례에 걸쳐 흉강 천자 및 결핵성 늑막염으로 진단하여 항결핵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잘 완치되었고 5년이 지난 지금도 간혹 외래에 오시면 그 때 나를 살려 주셨던 생명의 은인이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시곤 하신다.. . . . 사건은 그 이후에 터졌다... 할아버지의 결핵성 늑막염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20대 후반의 젊은 남성이 마찬가지로 한쪽 흉강으로 물이 차서 입원 치료를 하게 되었다. 젊은 남성 환자는 공교롭게도 일주일 후에 취직을 위한 면접이 잡혀 있어서 빨리 치료가 되어서 면접이 지장이 없기를 바라고 있었다... 일단은 바늘을 찔러 물을 빼낸 후 검사 결과에 따라 치료를 하고, 할아버지의 성공적 치료에 한껏 고무되어 있었던 나는 빠르면 2-3일 후에도 퇴원해서 정상적으로 면접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흉부 CT를 촬영한 후 바로 초음파 가이드로 천자 부위를 확인하고 마취 후 18게이지 바늘로 천자 후 약 1L의 흉수액을 배액시켰다. 환자를 병실로 올려보내고 오후에 가서 물어보니 숨차는 것이 전혀 호전이 없다는 것이다. 흉강천자 후 촬영한 X-ray를 보니....... 의인성 기흉(iatrogenic pneumothorax) 이었다. 좀 의아했다. 분명 초음파 가이드로 흉수를 확인하고 찔렀는데 기흉이라니.. 다시 앞서 촬영한 CT를 영상의학과 과장님께 문의해보니 흉막의 유착으로 인해 충분히 기흉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흉강천자를 하기 전 흉강천자 후 일어날 수 있는 합병증에 대해 사전에 보호자와 환자에게 설명을 하지 않았음에 있었다. 일단은 산소를 공급하면서 남아 있는 물도 빼고 공기도 빼내기 위해 흉강천자를 다시 시행하였고 주사기를 통해 인위적으로 최대한 배출시키고 X선을 찍었지만 허사였다.. 대학으로 전원하여 흉관삽관술을 해야 할 상황에 이른 것이다.. 보호자를 불렀다. 점심 시간에 환자의 누나가 왔길래 자초지종 설명을 드렸다.. 흉막의 유착이 있었고 흉수액이 차 있으므로 흉강천자를 해야 할 상황이었으며 기흉이 생긴 건 어떻게 보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보호자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더니 그럴 거 같았으면 왜 흉강천자를 했냐고, 자신이 없었으면 하지를 말지.... 앞으로 어떻게 할거냐고 따져 물었다.. 제가 미리 대학병원 흉부외과에 연락을 취해났으니 응급실로 가면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이 믿을 수가 없었던지 본인이 다른 병원을 알아보고 얘기하겠다고 하신다. 오후가 되어서야 결국 내가 얘기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시겠다고 하여 모든 자료를 챙겨드리고 전원시켜 드렸다..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근무를 마치고 응급실로 찾아 갔다. 환자는 이미 흉관이 삽관되어 있었다... 다시 보호자를 불러 응급실까지 오게 된 것은 나에게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으니 응급실 비용으로 당시 20 만원을 손에다 쥐어주고 씁쓸히 발길을 돌렸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뭐가 그리 자신에 찼는지 아무런 설명 없이 흉강천자를 했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고 설령 의인성 기흉이 생겼더라도 사전에 충분히 이에 대한 가능성을 미리 얘기를 했었더라면 나에게도 할 말이 있었을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내가 의사의 길을 가는 동안에는 흉강천자에 대한 phobia는 아마도 평생 남아 있을 것 같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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