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에서 > MStory

시골의사

NAME : 최고관리자 DATE : 15-05-28 15:49 HIT : 741

요즘 계속 날이 흐리거나 비가 보슬보슬 내리더니 오랜만에 날이 화창하게 개었다.

진료실에 있으니 예전 시골의사로 3년을 보냈던 기억으로 인해 15년 전의 추억으로 마음의 길을 나도 모르게 떠나게 된다.

솔직히 나는 의사가 적성이 맞는 건 아니다..

특히나 수술실이 너무도 싫어 학생 때 실습을 돌 때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이 내가 뭘 하는 것도 아닌데 낭떨어지로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사실 지금도 수술을 하는 과를 하라하면 의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도 싫어했던 병원 실습이 끝나고 의사국가고시를 준비하던 중 갑작스럽게 아버지께서 뇌출혈로 돌아가셨고 한달 이상

국가고시를 준비하지 못했던 나는 시험을 2개월 정도 앞두고 다시 공부하기 시작하여 다행히 의사국가고시는 합격을 하였다.
.
.
.

자신이 없었다.. 단지 종이로 된 면허증만 있었지 머리에 든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실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 의사의 신분으로 환자를 대하는 것이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좀 쉬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공중보건의사"

4주 간의 신병 훈련을 마치고 처음으로 부임한 곳은 "전라남도 광양의 다압보건지소"

광양시 중에서 가장 오지에 속하는 면으로 앞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백운산을 등지고 있으며 강을 건너면 경상남도 하동이 마주하고 있었다.

지금은 매화마을로 꽤나 유명한 곳으로 1년 중 매화축제를 할 때면 교통체증을 유발할 정도이지만 축제기간 외에는

정말 한적한 곳이다.

보건지소, 소방소, 면사무소가 나란히 위치해 있는데 해가 지고 소방소 및 면사무소 공무원들이 모두 퇴근하면

반경 수 km 내에서는 인적이 없는 곳이었다. 첫 한달 동안은 너무 어둡고 인적이 없어 관사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무서웠지만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니 모두 퇴근 후에는 보건지소에서 만큼은 모든 것이 내 세상이 된 것 같았다..

봄이 오면 해가 뉘엿뉘엿 산을 넘어갈 때면 천지에 개구리 소리가 진동하고 보건지소와 강 사이에 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는데

아침이면 늘 큰 개구리인지 두꺼비인지 차로에 쥐포처럼 납작해져서 깔려 있었다.

맑고 화사한 봄날, 강건너 쌍계사 가는 길에 벚꽃이 만개해 같이 근무하시는 여사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차를 몰고 쌍계사까지

가는데 지나는 차들도 없어 한적한 도로의 양옆으로 일렬로 늘어선 벚꽃 나무에서 눈이 오듯 떨어지는 벚꽃들을 맞으며 지나가던

그 때가 내 생애 최고의 드라이브였다.

어느 여름날 관사의 마루에 엎드러 누워서 책을 보는데 왠지 느낌이 이상해 고개를 들어 보니 뱀 한마리가 기어가고 있어 식겁했던 기억,

태풍이 불어 전기가 나갔는데 밤에 촛불이 없어 칠흑같던 어둠에 무서워 떨었던 기억,

비오는 날 진료소에 앉아 있을 때 비가 그친 후 햇빛에 비친 영롱한 물방울에 감동 받았던 기억,

관사로 들어온 작고 귀여운 청개구리들을 뚫어지게 관찰했던 기억,

추운 겨울날, 아침에 일어나 밖이 좀 눈이 부시길래 햇빛 때문에 그런 줄 알고 문을 열어 보니 밤새 눈이 와 온통 하얀 세상으로

변해 버린 기억.

모두가 추억이라는 책자의 페이지들을 장식하고 있는 기억들이다.
.
.
.

주말이면 부산에 있는 집에 가고자 보건지소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1시간에 한대씩 오는 버스를 집에 간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그 때에는 몰랐었다. 그 때의 그 순간순간들이 내게 얼마나 큰 축복의 시간이었는지를....

3년간 시골 의사로 지낸 후 나는 힐링되어 있었고 그 이후 12년 간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한번씩 또다른 힐링을 위해 1년 쯤은 다시 시골 의사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한다. ^^


NO	SUBJECT	NAME	DATE	HIT

8	후회	최고관리자	05-28	729

7	소소한 에피소드	최고관리자	05-28	763

	시골의사	최고관리자	05-28	742

5	phobia	최고관리자	05-28	754

4	보호자의 이름으로	최고관리자	05-28	534

3	신종플루에 대한 기억	최고관리자	05-28	607

2	젊은 부부	최고관리자	05-28	562

1	프롤로그	최고관리자	04-12	494

1 2

이름 패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