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루벤을 20년만에 다시 방문함으로써 이번 여행의 첫번째 목적을 이루었던 나는 다음 방문할 나라는
네덜란드로 정하였다.
시설이 좋았던 브뤼셀의 유스호스텔에서 나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기차에서 책자를 뒤적이면서 암스테르담에서의 방문지는 홍등가, 섹스 박물관으로 정하였다..
마약과 매춘이 합법화된 나라이기에 더욱 그런쪽에 호기심이 발동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프랑스 파리에서의 루브르 박물관을 끝으로 박물관은 다시 가지 않기로 마음 먹었지만 당시 혈기왕성하던 때라
섹스 박물관이 너무너무 궁금했었다...
네덜란드의 중앙역에 도착함으로써 네덜란드에서의 일정은 시작되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여행에서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다...
중앙역에서 먼저 information 창구를 찾아 주변 지도와 역 근처의 숙소를 소개받았다...
지도를 들고 소개받은 숙소로 갔는데 아마도 이번 여행 일정 중에서 가장 최악의 숙소였을 것이다.
시설도 낡았을 뿐만 아니라 왠지 벌레들도 우글거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의 도미토리룸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의 첫 인상은... 처음부터 불길함이었다...
대충 짐을 놔두고 작은 가방에 유레일 패스, 카메라, 전자 영어사전, 그리고 여행책자만을 넣고 홍등가를 돌기 시작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의 사창가처럼 놀다가라고 사람을 붙잡는 그런 행태는 전혀 없어서 마음 편히 주변을 돌아보며
걷다가 날은 저물어 어두워지고 거리의 네온사인이 밝아지니 홍등가가 오히려 낭만적이기까지 하였다...
간판을 보니 스트립쇼를 하는 곳인 것 같은데 입장료가 너무 싸서 일단 들어가봤는데 가운데 조그만 무대에서
여자댄서가 춤을 추고(실제로는 그냥 장식이 달린 비키니 같은 것을 입고 춤을 추고 있었음) 무대 주변으로 작은 방들이
빙 둘러져 있는데 한사람씩 작은 방에 들어가서 동전을 넣으면 차단막이 올라가서 가운데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는
댄서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고 한 2분정도 지나면 다시 차단막이 내려오는 식이었다...
참 뻘쭘했던 것이 내가 있는 방에서 다른 방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들도 다 보여서 나야 머나먼 이국땅에서 온 동양인이니까
관계없지만 혹시나 아는 사람을 본다하면 참 민망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다음 행선지는 섹스박물관...
입장료를 주고 들어가긴 했는데 혼자라 그런가 좀 민망하기도 하고 그냥 대충대충 기웃기웃하다가 입장료 값도 못하고 빨리 나왔다...
'역시나 나는 박물관 체질은 아닌가보다'
2002년 당시에는 곳곳에 인터넷 까페가 있었는데(체인점으로 운영되고 있었음) 여러 정보도 검색하고 메일도 확인할 겸
하이네켄 맥주 하나 사들고 들어갔다...
가방은 발밑에 두고 한참 인터넷 검색을 하는데 내 뒤에서 인터넷을 하던 어떤 외국인이 나에게 무슨 말을 거는데
1분도 안되게 짧게 대답하고 다시 내 할 일을 했다..
메일도 확인하고 보내기도 하고 필요한 정보 검색도 다 마치니 한 1시간 쯤 지났고 이제 일어서려고 발밑에 두었던
가방을 집으려고 하는데... 엇!!!!!!! 발밑에 있어야 할 가방이 없어진 것이다....
순간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마치 반사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가방이 있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비로소 가방을 도둑맞았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급하게 점원에게 내 가방을 도둑맞은 것 같다고 얘기를 했더니 CCTV를 확인해 보겠다고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CCTV를 확인해보니 요즘 유행하는 수법인데 한사람이 뒤에서 말을 걸고 맞은편에서 가방을 몰래 빼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찰서 위치를 알려주면서 신고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한국에서도 가보지 않았던 경찰서를 머나먼 이국땅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가게될 줄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한국의 파출소와 같은 규모의 경찰서에 가서 예쁘장하게 생긴 외국여성 경찰관에게 자초지종 안되는 영어로 대충 설명을 하고
A4지 용지 한장에 잃어버린 물건들 목록을 적은 뒤 혹시 가방을 찾게 되면 보관을 해놓을테니 내일 다시 경찰서로 오라고 하였다...
경찰서 문을 나서니 그때가 밤 10시인 것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도 여권과 항공권, 현금과 수표, 그리고 카드 등은 복대에다 넣고 가방에 넣지 않고 배에 차고 있었던 터라
잃어버리지 않았다...
안그래도 숙소도 최악이었는데 숙소로 돌가가는 내 발걸음이 천근만근 너무나 무거웠던 네덜란드에서의 첫날이었다...
할루미
21-02-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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