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되서 벨기에의 루벤대학으로 유학을 가셨고 그 후 얼마 안있어 어머니도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위해 떠나셨다.
나와 형들은 어린 시절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느 정도 벨기에 루벤에서 자리를 잡으신 후 어머니께서 한국에 오셔서 우리 삼형제와 눈물의 상봉 후 저희들을 데리고 아버지가 계시는 벨기에로 돌아오셨다.
그로부터 다시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1년을 넘게 벨기에 루벤지역에 살게 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여름...
내가 살던 동네는 수백년된 집들이 그대로 보존된 지역으로 매일 단체 관광객들이 오는 마을로 길들은 아스팔트가 아닌 수백년된 울퉁불퉁한 돌길이었고 동네 아이들은 인종도 다양해서 미국에서 온 아이, 이태리에서 온 아이, 아프리카 흑인, 그리고 나와 형들은 한국인으로 늘상 집앞 넓은 잔디에서 축구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가 주로 놀던 잔디에는 커다란 체리나무가 있었는데 나뭇가지에 열매가 열리면 축구공을 던져 가지를 부러뜨려서 체리를 따먹곤 했는데 어느날 그 장면을 보신 아버지께 혼이 났던 기억도 새롭다.
겨울이면 눈이 나의 무릎까지 쌓이도록 왔었고 모든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눈사람을 만들도 기억도 새롭다.
추운 겨울 세탁소의 한 외벽 공간에서 따뜻한 공기가 김을 내며 나오는 것을 그 바깥 외벽에 쪼그리고 앉아 추위를 녹이던 기억도 지금은 새롭다.
우리집에 한국 사람들이 놀러와 밤늦도록 있다가 집에 돌아가기 위해 집을 나와 바깥 밤공기를 마시며 "공기가 너무 좋네" 라고 감탄하던 그 때는 이해를 못했다.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를....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한국으로 귀국을 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막연한 추억으로 자리잡았을 뿐 어린 시절 내가 보낸 그 곳을 다시 방문해야 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의과대학 졸업 후 공중보건의로 3년을 보내면서 유럽을 여행하기로 마음먹었고, 공중보건의로 국가의 의무를 다한 후 바로 병원에 인턴으로 취직하지않고 어머니에게 1년은 쉬겠다고 말씀드려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벨기에 루벤에서 1년 6개월을 산 후 다시 한국에 와서 20년만에 다시 그곳을 방문할 계획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