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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NAME : 최고관리자     DATE : 15-05-29 16:55     HIT : 1340

환자를 진료하면서 가장 곤란한 경우가 중독된 환자들이다.. 알코올 중독, 니코틴 중독, 프로포폴 중독, 그리고 마약 중독 등등.. 사실 임상에서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흔히 접하게 된다.. 알코올성 간염 및 간경화... 몸이 안좋아 잠시 입원하였다가 회복되면 다시 술을 마시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한번만 더 술을 마시면 다음부터는 입원 안된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그때뿐이다.. 하지만 알코올보다 비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중독성을 가지는 것은 마약이다. 드물게 마약 중독자들을 접할 수가 있는데 내가 경험한 것은 만성 췌장염을 가장하여 진료를 받으러 온 경우이다. 1년 전이었다. 환자가 접수하여 진료실에 들어왔는데 서류뭉치를 뒤적뒤적 거리더니 소견서를 내 앞으로 하나 내미는 것이다. 소견서의 내용은 환자는 만성 췌장염으로 진단되었고 필요시 입원 치료를 요한다는 것이었다. 입원을 원하느냐고 물으니 입원은 원하지 않고 그냥 통증이 심해 주사만 한대 맞고 가겠다고 한다... 좀 실랑이가 있었다.. 혈액 검사로 췌장염의 정도를 확인하자고 하니 소견서가 있는데 왜 그러냐고 따지는 것이다.. 그리고 좀 아파보이기는 했다. 이번에는 마약성 진통제가 나가지만 다음부터는 다니던 병원으로 가서 필요시 치료받도록 당부드렸다.. 환자는 진료실 밖으로 나가면서 이번에 주사를 맞고 이제 다시는 이 병원에는 오지 않겠노라고 나에게 다짐하였다.. 그로부터 딱 1년 후 다시 병원을 찾은 것이다.. 자리에 앉더니 마찬가지로 소견서를 하나 내미는데 1년전과 똑같은 이미 빛바랜 소견서였다. 그리고 오후에 법원에 가야하니 빨리 주사를 놔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투나 행동이 통증이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완전한 중독이었다. 이때부터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1년 전 다시는 이 병원에 오지 않겠다면서 왜 왔냐고.. 내가 한 말 기억 못하느냐고... 나를 죽일 듯이 쏘아 보았다.. 의사 선생님이 아픈 환자를 이렇게 방치해도 되냐고... 순간 또다른 마약 중독자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수 년 전 30대 중반의 환자가 접수됐는데 메모란에 '전과자. 마약 처방 안됨' 이라고 떴다. 솔직히 겁이 났었다. 환자가 들어오더니 대뜸 자신은 췌장염이니 마약진통제를 놔달라는 것이다. 마약진통제는 그렇게 바로 놔주는 것이 아니고 우선 췌장염이 맞는지 혈액 검사부터 하자고 했다. 진료실 컴퓨터를 뚫어지게 보더니 메모란에 적혀 있던 자신의 정보를 보고는.. '내가 지금 적혀있는 걸 봤는데 주사 놔 줄거요? 말거요?' '주사 안됩니다' 마침 원무과 직원이 진료실로 들어왔고 환자의 팔을 잡고 나가자고 했다.. 그러자 직원의 팔을 세차게 뿌리치면서 쌍욕을 하더니 진료실에 침을 탁 뱉고는 나가는 것이다. '너 이 xx, 네 눈에 띄면 죽어' 계속된 기싸움에 원무과 직원이 들어 왔고 원무과 직원에게 환자를 모시고 나가라고 했다. 이전의 전과자와 같이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진료실을 나가면서 두고보자는 분노의 그 눈빛이 참 기분이 나빴다.. 그로부터 수 일 지나 근처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후배와 식사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는데 얼마 전 마약진통제를 맞으러 왔던 그 환자가 근처의 다른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주사를 맞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독된다는 것.. 처음에는 자기도 모르게 육신을 파괴해가다가 결국에는 정신까지도 피폐해지는, 모든 존엄성을 상실해 버리는 참 무서운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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